10월 24일 오전 7시, 원래 이 인간은 주말에 기본 9시까지는 수면을 취해야 하는데 오늘은 회사 워크샵이라나 뭐라나 오전 8시 30분까지 회사에 도착하기 위해 눈을 뜬다. 보통 인간은 주말에 휴식을 취함으로써 주중에 소모한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회복한다. 물론 인간의 몸을 숙주로 삼고 있는 우주 생물인 나에게 숙주인 인간의 육체가 휴식을 통해 에너지를 회복하면 나에게도 매우 좋은 일이지. 하지만 내가 숙주로 삼고 있는 이 인간은 비만에 중증 지방간이 있다. 또한 여기 저기 말하기도 귀찮은 이상한 질병들을 달고 다닌다. 질환 대부분이 식탐과 생활습관, 그리고 운동부족으로 인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난 주말 휴식을 포기하고 이 게으른 녀석에게 운동 처방이라도 내릴 겸 회사 워크샵에 참여하도록 했다.
주섬주섬 짐을 싸서 집을 나선다. 밤새 내린 비 때문인지 아침 공기가 상쾌하다. 회사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모두 같은 모양의 옷을 입고 있다. 내 인간 숙주만 조기축구 회원처럼 운동복으로 쫙 빼입고 있네…… 음 얘기를 들어보니 깜박 잊고 단체 티를 놓고 온 것이다. 몸 상태와 정신 상태가 이렇게 일치할 수가…… 다행이 남은 티셔츠가 있다고 한다. 역시 이포넷은 항상 플랜 B를 준비해 놓는다. 워크샵 장소로 가는 버스에 앉자마자 김밥이라는 먹을 것을 준다. 내 숙주는 겨자가 들어가서 맵다고 하면서도 옆 사람 것까지 먹었다. 일도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버스가 출발하고 시간이 좀 지나자 잠이 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작부터 김밥을 두 개나 먹은 내 숙주는 버스에서 자면서 코를 골기 시작한다. 가지가지 한다. 중간 중간 고 코는 소리가 너무 커지면 내가 뇌를 자극하여 잠을 깨웠다. 그러면 다시 잠들고 다시 코고는 소리가 커지면 내가 깨우고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 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워크샵 장소는 지금까지 회사 워크샵 장소 중 가장 좋았다. 주변 자연 환경도 좋고 시설도 깨끗했다. 도착하자 마자 내 숙주가 근무하는 회사 사장님이 나오셔서 멋진 프레젠테이션을 보여 주었다. 올해가 창립 20 주년이라고 한다. 20년 동안 꾸준히 한 가지 일을 해왔다는 것은 어떻게든 의미 있는 일이다. 나도 안드로메다 너머에 있는 고향 별로 돌아가면 지구에서의 생활 기록을 동료들 앞에서 멋지게 프레젠테이션 해야겠다. 사장님 말씀이 끝나고 성희롱 교육이 이어졌다. 남자가 여자에게 해서는 안 될 행동, 여자가 남자에게 해서는 안 될 행동이 교육되었다. 우리 외계인은 암수 구별이 없기 때문에 저런 걱정이 없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옆에 앉아 있던 이창일이라는 인간이 왜 남자끼리 성추행 사례는 안 나오냐며 분계 했다. 그러고 보니 같은 성끼리도 추행이나 희롱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결국 이것은 성별의 문제가 아닌 타인에 대한 존중의 문제라고 결론지었다. 나도 앞으로 동료 외계인을 만나면 조심해야겠다. 과연 그날이 올까?
점심을 먹고 본격적인 체육활동을 했다. 미리 나눠진 조에 따라 모여서 팀을 이뤘다. 인간들에게는 알게 모르게 상하관계라는 것이 있다. 아마도 여러 사람들이 모여 살다 보니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 진 것 같다. 주로 나이로 결정되며 회사에서는 여기에 직급이라는 기준이 적용된다. 여러 사람이 모여 팀을 이루게 되면 다양한 나이와 직급의 사람들이 모인다. 그런데 이포넷은 전통적으로 가장 나이가 어리거나 직급이 낮은 사람이 팀의 리더가 된다. 이게 직급이 높은 사람이 리더라는 중책을 맡기 귀찮아서인지 아니면 이 때만큼은 나이나 직급에 상관없이 가장 연약한 리더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라는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직급이 높다고 해서 가만히 있는 사람 없이 모두 적극적으로 게임에 임하는 것으로 봐서 아마 후자의 의미가 맞을 것 같다. 아무튼 찬수 주임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게임을 진행했다. 내 숙주는 너무 오랜만에 몸을 움직여서 매우 힘들어 하면서도 재미있어 했다. 씨름이라는 것도 했다. 얘가 도대체 평소에 어떻게 행동했는지 보는 사람들마다 다 씨름 나가라고 등을 떠미는 것이었다. 씨름이라는 게 두 사람이 서로 부둥켜 않고 몸을 비비다가 같이 넘어지는 것이다. 아마도 내 숙주가 평소에 잘못한 게 있어서 벌을 주는 게 아닌가 라고 생각했다.
땀을 빼고 나니 어찌 밥이 맞이 없으랴. 이날 만은 내 숙주가 먹고 마셔도 눈감아 주기로 했다. 한참 식사를 하는데 한쪽에서 한 무리의 남자들이 “마셔라 마셔라 쭉-쭉 쭉쭉” 하면서 사람들에게 알 수 없는 액체를 먹이기 시작했다. 무슨 의식인 것 같았다. 장일훈 수석님이라는 분이 아무래도 의식을 주관하는 것처럼 보였다. 무엇을 먹이는지 궁금하던 차에 내 앞에 앉아 계시던 지미희 차장님이라는 선하게 생기신 분에게 술잔이 돌아왔다. 자세히 보내 맥주잔 안에 콜라는 달콤한 액체를 붇고, 그 위에 소주잔을 놓고 소주를 한 잔 채운 다음 나머지 위 공간을 거품을 잔뜩 낸 맥주로 채운 것이었다. 특히 맥주는 잘 흔들어서 거품을 발생시킨 후 강한 압력으로 채워 넣는데 대단한 기술자를 고용한 듯 했다. 지미희 차장님이 힘겹게 두 번에 나눠서 맥주와 소주 부분을 거의 다 마신 상태에서, 장일훈 수석님이 안쓰러웠는지 도와 주신다면 맨 아래 남아 있는 달콤한 콜라 부분을 대신 마셔 주셨다. 결과적으로 도와준 것도 아니고 안 도와준 것도 아닌 상황이 되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카페에 모여, 인간들 말로 음주가무라는 신나는 의식을 진행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내 숙주는 운동하라면 죽어도 하기 싫어하면서 술 먹고, 노래하고, 춤출 때가 되면 아주 딴사람이 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평소에 조용하던 사람들도 한데 모여 신나게 노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장님부터 막내까지 모두 내일은 없을 것처럼 신나게 놀다 보니 모두 견고하게 하나가 됨을 느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관리하시는 할아버지께서 너무 시끄럽다는 민원을 노구를 이끌고 손수 오셔서 전해 주셨다. 이 귀여운 민원에 분위기가 살짝 블루스 타임으로 바뀌면서 놀다가 난 힘든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 왔다. 워크샵에 와서 마음껏 샤워를 하는 것도 감격스러웠는데 워크샵 준비위원들이 세심하게도 코고는 사람들로 한 방을 채워줘서 아주 리드미컬한 수면을 이룰 수 있었다. 민경준 과장이라는 인간이 저음 파트를 맡았고 내 숙주는 탱크 주법과 무호흡이라는 테크닉으로 현란한 애드립을 선사했다. 무호흡 연주를 너무 열정적으로 했는지 아침에 일어나니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서 머리가 띵했다. 다행히 조식으로 나온 홍합탕을 먹고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마지막 이벤트로 보물찾기를 했다. 역시 보물은 못 찾았다. 내 숙주는 경품, 추첨 등에는 소질이 없어도 너무 없다. 그래도 작대기를 들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작은 돌멩이 여기저기를 뒤집고 풀 속을 들쑤시고 다니는 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덕분에 술도 깨고 나 자신을 되돌아 보는 시간도 가졌다. 역시 안된 사람은 뭘 해도 안 된다는 인간의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 할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성한 곳이 없는 몸으로 월요일 출근을 했다. 온 몸이 근육통으로 성한 곳이 없지만 이번 워크샵은 매우 성공적인 이벤트로 후세 이록될 것이다.
이 후기를 스파이더맨 게임을 하다 인대 부상을 당해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박유나 사원에게 바친다.


* 글: 이포넷 T&G 사업본부 김동빈 과장

Posted by E4.